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4
화석연료,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 가능
핵융합 ‘기적의 신기술’ 기다릴 시간없다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바꿀 의지가 없다
공기오염으로 매년 700만이 목숨 잃어
석유파동 50주년, 다시 탈화석연료 도전
스웨덴 출신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20)가 20일(현지시각)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가 열리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날 툰베리는 다보스포럼 참석자들에 대해 "여기 온 사람들은 이 행성(지구)의 파괴를 부추기고 있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6일 개막해 이날까지 열리는 이 포럼에는 전 세계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기후위기, 인플레이션 등 지구촌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2023.01.20 로이터 연합뉴스
화석연료 퇴장 기술 이미 충분
지구 온난화,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화석연료를 퇴장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기술혁신이 이뤄져야 할까?
‘그린 뉴딜’정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진 마크 제이콥슨 스탠포드 대학 교수는 “기적은 필요없다”(No Miracles Needed)고 했다. 2월에 캠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될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예컨대 핵융합 상용화와 같은 획기적인 신기술 없이도 화석연료를 퇴장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제이콥슨은 석탄과 천연가스, 석유를 쓰지 않고도 지금 인류가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용하게 될 에너지를 100%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바람(풍력), 태양(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만으로도 인류가 쓰는 에너지를 완전히 충당할 수 있으며, 지금 당장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도 이미 갖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는 기적의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필요한 기술을 이미 갖고 있다. 우리는 바람, 태양, 지열, 수소, 전기차를 갖고 있다. 배터리와 열 펌프(냉난방 장치), 에너지 효율도 갖고 있다. 우리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술의 95%를 지금 갖고 있다.”(<가디언> 1월 23일) 나머지 5%는 항공이나 선박 등 장거리 운송에 필요한 기술들인데, 그는 수소연료전지로 해결할 수 있다며 더 개발돼야 하지만 기술 자체는 이미 갖고 있다고 본다.
15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 알핀 리조트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앞두고 기후활동가들이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올해 53회째인 이번 다보스포럼은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라는 주제로 오는 16일부터 4박 5일간 열린다. 2023.01.16. 로이터 연합뉴스
아직도 화석연료에 80% 의존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절대적이다. 인류는 아직도 사용 에너지의 5분의 4(80%)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지구상의 대다수 국가들은 인류의 절멸을 부를지도 모를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번 세기의 지구 대기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하로 억제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이상 줄여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팬데믹+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런 당위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 1.5도 억제목표 달성은 물거너 갔다는 얘기들도 나돈다. 기후위기에다 최근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과 같은 지정학적 요인들이 겹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천연가스 공급의 36%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던 유럽은 러시아의 공급중단으로 에너지위기 대란을 맞았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끝낸 중국의 공장들이 재가동될 경우 에너지 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세계화의 퇴조와 함께 대두되고 있는 자원 민족주의, 보호주의도 이에 가세했다. 이에 따라 각국이 에너지 수급체제의 전면적인 재검토에 쫓기면서, 석탄 등 화석연료 퇴출 시기를 늦추거나 탈원자력에서 탈 탈원자력으로 방향을 바꾸는 지역들도 나타났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이런 거꾸로 가는 움직임 속에 제이콥슨 교수는 바람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문제해결의 ‘정답’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날 연설에서 거대 석유업체들이 그들의 사업과 인간의 생존은 양립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생산을 확대하려 한다며 비난했다.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전 세계 정·재계 리더 2천700여명이 참여해 글로벌 현안의 해법을 모색한다. 2023.01.18 AP 연합뉴스
신원전, 시간 낭비다
책 출간을 앞두고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예컨대 안전한 소형 모듈화를 내세운 이른바 신원전에 대해 그는 건설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바람과 태양 에너지에 비해 값도 너무 비싸다며 반대한다. 15년, 20년 기다려서 (재생에너지보다) 7, 8배 더 비싼 전기료를 내게 될 텐데, 말이 되느냐고 그는 말한다. 건설기간을 단축해서 12년만에 완공하더라도, 그것보다 훨씬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안전한 기술들을 이미 갖고 있는데 왜 시간을 낭비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바이오연료나 공기 중의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바이오연료는 공기오염을 줄이지 못하고, 생산을 하려면 넓은 땅도 있어야 한다.
탄소 포집 기술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서 탄소를 줄이는 효과는 들이는 비용에 비해 신통찮으며, 차라리 나무를 많이 심거나 가축, 비료가 내뿜는 메탄, 질소 등의 온난화가스 배출을 줄이는 쪽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심지어 탄소 포집 및 퇴적 기술은 순전히 화석연료 산업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고안된 술수라고 본다. 화석연료에서 함께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제거한 뒤에 남는 블루 수소도 재생에너지로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그린 수소에 비해 훨씬 열등한 에너지라고 혹평한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10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북미 3국(미국 멕시코 캐나다) 정상회의가 끝난 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정상회의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고체 폐기물과 폐수에서 나오는 메탄 배출량을 저감하자는 목표가 제시됐다. 2023.01.11. 로이터 연합뉴스
위험한 기술 제일주의
제이콥슨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접근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그 한 가지가 일정기간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신기술을 개발하기로 하고 대량의 자금을 투입해서 전면적인 전환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그는 예컨대 10년 뒤에 쓸 수 있을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신기술을 기대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성공하느냐 실패냐를 떠나 10년이면 너무 늦다고 얘기한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지금의 거의 절반 이상을 줄여도 1.5도 상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2030년대 중반까지 성공이 보장돼 있는 것도 아닌 기술을 기다리며 손 놓고 있을 것이냐는 얘기다.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에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로 참석한 존 케리 전 상원의원이 그런 접근 자세를 취했다. 그는 이번 세기 중반까지 온실가스를 절반으로 줄이려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핵융합 같은 것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기후학자 마이클 만은 그것을 “유해한 기술 제일주의”라며 비판했다. 스웨덴의 젊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그런 접근법을 다음과 같히 희화화하며 조롱했다. “희소식입니다. 해리 포터와 얘기했는데, 그가 간달프, 셜록 홈즈, 어벤저스와 함께 즉시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더라고요.”(<이코노미스트> 1월 25일)
11일(현지시각) 독일 서부 뤼체라트 마을에서 경찰들이 기후활동가들을 연행하고 있다. 기후활동가들은 인근 탄광에 매몰된 석탄 채굴을 위한 마을 철거를 막기 위해 일대를 점거하고 평화시위에 나섰다. 정부의 승인으로 경찰은 이날 마을 철거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활동가들도 물러서지 않아 양측 간 충돌이 예상된다. 2023.01.11. AFP 연합뉴스
공기오염으로 매년 7백만명 사망
제이콥슨의 접근법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을 지금 당장 활용하면서 모자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계속 고치고 채워나가자는 것이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풍력, 태양광 에너지 활용, 배터리와 전기차 이용을 통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 가면서 기술도 개선해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시간이다. 그는 공기 오염 때문에 매년 70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며,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는 재생에너지만으로도 100%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는 기술을 우리가 이미 갖고 있다며,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경우 에너지 사용 요금을 대폭 낮출 수 있고, 온난화가스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쓰는 전기차, 전기난방, 산업의 전화(電化) 쪽이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다량의 에너지를 열로 낭비하는 내연기관보다 훨씬 더 효율성이 높다. 그리고 단열재 활용 건물을 짓고, 화석연료를 얻기 위해 굴착하고 채광하는 작업과정에서 낭비되는 총에너지의 11%나 되는 에너지를 살려내면 2035~2050년에 평균 소요에너지의 56%를 절감할 수 있다.
바람, 물, 태양 에너지 활용에도 금속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한 채광작업도 해야 하지만, 그 양은 화석연료 시스템에 소요되는 금속의 1%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화석연료 에너지보다 훨씬 싸서 평균 사용요금을 그보다 63%나 줄일 수 있다고 제이콥슨은 얘기한다.
프랑스 환경단체 '데르니에르 레노바시옹' 소속 활동가들이 4일(현지시각) 파리의 총리관저 입구에 페인트를 뿌리던 중 연행되고 있다. 이들은 환경보호에 나서지 않는 정부를 규탄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이러한 일을 벌였다. 2023.01.05. 로이터 연합뉴스
재생에너지 활용을 막는 장애물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100% 활용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있다. 제이콥슨이 보기에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들이 재생에너지로 화석연료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되면 실제로 그렇게 할 것이다. 자신의 역할은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두 번째 장애는 앞서 얘기한 신기술, 예컨대 탄소 포집, 소형 원전 모듈화, 바이오연료, 블루 수소 같은 기술에 모든 것을 걸고 입법화해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것도 거의 쓸모없거나 아주 낮은 활용가치밖에 없다는 것이 제이콥슨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왜 그런 일을 계속하느냐? 그래서 이득을 보는 거대 로비그룹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장벽은 가난한 나라들이 재생에너지 활용 시스템으로 이행할 수 있게 해 줄 초기비용이다. 이것을 부자나라들이 도와주면 100% 재생에너지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질 수 있다. “(탄소배출 삭감) 목표는 2030년까지 80%, 2050년까지 100%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2030년까지 80%를 달성할 수 있다면 2035~2040년에 100%를 달성할 수 있다.”
독일 기후환경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ion) 활동가들이 4일(현지시간) 수도 베를린에서 '2022년은 시작에 불과했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 위기 경각심을 일우려 지난해 명화 훼손, 도로 점거 등의 시위를 벌였다. 2023.01.04 로이터 연합뉴스
장애물은 없앨 수 있다
여기에는 재생에너지 송전망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수요를 관리하며, 불었다 안 불었다 하는 바람과 낮밤으로 바뀌는 태양 에너지의 불연속,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과 관련해 제이콥슨은 대형 화석연료 발전소들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대형 발전소들도 유지 보수 작업과 노후화 때문에 정전 등의 유사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21년에 전기에너지의 75%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정전사태가 일어나고 전기료가 폭등했는데, 이는 원전 설비에 문제가 있어서 4기의 원자로 가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송전망들을 상호연결하고 여러 가지 에너지 축적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에너지 축적과 관련해 제이콥슨은 배터리 방식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본다.
수요를 충당하고 남는 재생에너지는 강도가 높은 에너지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연료전지 충전을 위한 그린 수소 생산에 투입돼야 한다. 제이콥슨이 보기에 이에 필요한 기술들을 활용하는 것은 최적화의 문제이지 로켓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재생에너지 활용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을 통해 해결된다.”
20일(현지시각) 환경단체 '멸종 저항' 활동가들이 프랑스 파리의 한 도로에 앉아 동아프리카 송유관(EACOP)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재 탄자니아와 우간다는 자국 영토를 가로지르는 1,443km 길이의 대형 송유관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의 에너지 대기업 토탈에너지가 사업을 주도한다. 2023.01.20 로이터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는 문제
<이코노미스트>는 기본적으로 제이콥슨의 문제의식에 동조하지만, 20년 정도의 단기간에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과욕’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에너지부가 2021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활용이 100%에 가까울수록 비용대비 효율이 높아지지만 마지막 몇 % 달성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실력 이상으로 한꺼번에 덩치를 키우고 밀어붙이면 공급망이 막히는데다, 님비현상도 있고 금방 개선되지 않는 규제들도 장애가 된다. 예컨대 미국에서 태양광 프로젝트들을 상호연결하려면 2005년에 비해 2배가 넘는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에서는 풍력발전 프로젝트 허가를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지금 건설중인 프로젝트의 8배가 넘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적하는 것은, 핵융합 같은 게임 체인저급 기적의 기술 개발을 굳이 거부할 것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이콥슨은 탄소 포집과 격리(퇴적), 바이오연료 같은 기술들은 풍력이나 태양광보다 덜 환경친화적이고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투자를 오히려 방해한다며 반대하지만, 모든 기술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화석연료 퇴출에는 기본적으로 제이콥슨과 같은 입장이지만, 2050년까지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탄소 포집, 합성연료 등을 포함해 아직 상업화되지 않은 기술들의 개발을 통한 대규모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패티 비롤 의장은 그런 기술 개발을 ‘헤라클레스의 과업’이라며, 혁신을 위한 기술개발 투자 없이는 목표 달성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석유파동 50주년, 다시 탈석유 도전
제이콥슨은 기술 개발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기술들을 버려 둔 채 기적의 신기술이 나와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온난화를 막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은 채 기존방식에 기대어 단물만 빨려는 기득권자들을 비판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2023년은 1973년에 이른바 ‘석유 파동’이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오펙 의장이던 셰이크 자키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말했다.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니다. 석유시대도 세계가 석유를 소진하기 한참 전에 끝날 것이다.”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석유시대다. 하지만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가 겹치면서 그 시대가 조만간 끝날 조짐을 확실히 보이고 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중동의 석유 부국들이 탈석유에 대비한 새로운 생존방식 추구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이 그것을 웅변한다. 그러나 제이콥슨이 10년도 기다릴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재생에너지로 만회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희망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4
화석연료,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 가능
핵융합 ‘기적의 신기술’ 기다릴 시간없다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바꿀 의지가 없다
공기오염으로 매년 700만이 목숨 잃어
석유파동 50주년, 다시 탈화석연료 도전
스웨덴 출신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20)가 20일(현지시각)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가 열리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날 툰베리는 다보스포럼 참석자들에 대해 "여기 온 사람들은 이 행성(지구)의 파괴를 부추기고 있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6일 개막해 이날까지 열리는 이 포럼에는 전 세계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기후위기, 인플레이션 등 지구촌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2023.01.20 로이터 연합뉴스
화석연료 퇴장 기술 이미 충분
지구 온난화,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화석연료를 퇴장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기술혁신이 이뤄져야 할까?
‘그린 뉴딜’정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진 마크 제이콥슨 스탠포드 대학 교수는 “기적은 필요없다”(No Miracles Needed)고 했다. 2월에 캠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될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예컨대 핵융합 상용화와 같은 획기적인 신기술 없이도 화석연료를 퇴장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제이콥슨은 석탄과 천연가스, 석유를 쓰지 않고도 지금 인류가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용하게 될 에너지를 100%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바람(풍력), 태양(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만으로도 인류가 쓰는 에너지를 완전히 충당할 수 있으며, 지금 당장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도 이미 갖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는 기적의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필요한 기술을 이미 갖고 있다. 우리는 바람, 태양, 지열, 수소, 전기차를 갖고 있다. 배터리와 열 펌프(냉난방 장치), 에너지 효율도 갖고 있다. 우리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술의 95%를 지금 갖고 있다.”(<가디언> 1월 23일) 나머지 5%는 항공이나 선박 등 장거리 운송에 필요한 기술들인데, 그는 수소연료전지로 해결할 수 있다며 더 개발돼야 하지만 기술 자체는 이미 갖고 있다고 본다.
15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 알핀 리조트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앞두고 기후활동가들이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올해 53회째인 이번 다보스포럼은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라는 주제로 오는 16일부터 4박 5일간 열린다. 2023.01.16. 로이터 연합뉴스
아직도 화석연료에 80% 의존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절대적이다. 인류는 아직도 사용 에너지의 5분의 4(80%)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지구상의 대다수 국가들은 인류의 절멸을 부를지도 모를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번 세기의 지구 대기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하로 억제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이상 줄여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팬데믹+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런 당위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 1.5도 억제목표 달성은 물거너 갔다는 얘기들도 나돈다. 기후위기에다 최근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과 같은 지정학적 요인들이 겹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천연가스 공급의 36%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던 유럽은 러시아의 공급중단으로 에너지위기 대란을 맞았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끝낸 중국의 공장들이 재가동될 경우 에너지 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세계화의 퇴조와 함께 대두되고 있는 자원 민족주의, 보호주의도 이에 가세했다. 이에 따라 각국이 에너지 수급체제의 전면적인 재검토에 쫓기면서, 석탄 등 화석연료 퇴출 시기를 늦추거나 탈원자력에서 탈 탈원자력으로 방향을 바꾸는 지역들도 나타났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이런 거꾸로 가는 움직임 속에 제이콥슨 교수는 바람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문제해결의 ‘정답’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날 연설에서 거대 석유업체들이 그들의 사업과 인간의 생존은 양립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생산을 확대하려 한다며 비난했다.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전 세계 정·재계 리더 2천700여명이 참여해 글로벌 현안의 해법을 모색한다. 2023.01.18 AP 연합뉴스
신원전, 시간 낭비다
책 출간을 앞두고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예컨대 안전한 소형 모듈화를 내세운 이른바 신원전에 대해 그는 건설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바람과 태양 에너지에 비해 값도 너무 비싸다며 반대한다. 15년, 20년 기다려서 (재생에너지보다) 7, 8배 더 비싼 전기료를 내게 될 텐데, 말이 되느냐고 그는 말한다. 건설기간을 단축해서 12년만에 완공하더라도, 그것보다 훨씬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안전한 기술들을 이미 갖고 있는데 왜 시간을 낭비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바이오연료나 공기 중의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바이오연료는 공기오염을 줄이지 못하고, 생산을 하려면 넓은 땅도 있어야 한다.
탄소 포집 기술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서 탄소를 줄이는 효과는 들이는 비용에 비해 신통찮으며, 차라리 나무를 많이 심거나 가축, 비료가 내뿜는 메탄, 질소 등의 온난화가스 배출을 줄이는 쪽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심지어 탄소 포집 및 퇴적 기술은 순전히 화석연료 산업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고안된 술수라고 본다. 화석연료에서 함께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제거한 뒤에 남는 블루 수소도 재생에너지로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그린 수소에 비해 훨씬 열등한 에너지라고 혹평한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10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북미 3국(미국 멕시코 캐나다) 정상회의가 끝난 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정상회의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고체 폐기물과 폐수에서 나오는 메탄 배출량을 저감하자는 목표가 제시됐다. 2023.01.11. 로이터 연합뉴스
위험한 기술 제일주의
제이콥슨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접근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그 한 가지가 일정기간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신기술을 개발하기로 하고 대량의 자금을 투입해서 전면적인 전환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그는 예컨대 10년 뒤에 쓸 수 있을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신기술을 기대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성공하느냐 실패냐를 떠나 10년이면 너무 늦다고 얘기한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지금의 거의 절반 이상을 줄여도 1.5도 상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2030년대 중반까지 성공이 보장돼 있는 것도 아닌 기술을 기다리며 손 놓고 있을 것이냐는 얘기다.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에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로 참석한 존 케리 전 상원의원이 그런 접근 자세를 취했다. 그는 이번 세기 중반까지 온실가스를 절반으로 줄이려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핵융합 같은 것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기후학자 마이클 만은 그것을 “유해한 기술 제일주의”라며 비판했다. 스웨덴의 젊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그런 접근법을 다음과 같히 희화화하며 조롱했다. “희소식입니다. 해리 포터와 얘기했는데, 그가 간달프, 셜록 홈즈, 어벤저스와 함께 즉시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더라고요.”(<이코노미스트> 1월 25일)
11일(현지시각) 독일 서부 뤼체라트 마을에서 경찰들이 기후활동가들을 연행하고 있다. 기후활동가들은 인근 탄광에 매몰된 석탄 채굴을 위한 마을 철거를 막기 위해 일대를 점거하고 평화시위에 나섰다. 정부의 승인으로 경찰은 이날 마을 철거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활동가들도 물러서지 않아 양측 간 충돌이 예상된다. 2023.01.11. AFP 연합뉴스
공기오염으로 매년 7백만명 사망
제이콥슨의 접근법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을 지금 당장 활용하면서 모자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계속 고치고 채워나가자는 것이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풍력, 태양광 에너지 활용, 배터리와 전기차 이용을 통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 가면서 기술도 개선해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시간이다. 그는 공기 오염 때문에 매년 70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며,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는 재생에너지만으로도 100%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는 기술을 우리가 이미 갖고 있다며,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경우 에너지 사용 요금을 대폭 낮출 수 있고, 온난화가스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쓰는 전기차, 전기난방, 산업의 전화(電化) 쪽이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다량의 에너지를 열로 낭비하는 내연기관보다 훨씬 더 효율성이 높다. 그리고 단열재 활용 건물을 짓고, 화석연료를 얻기 위해 굴착하고 채광하는 작업과정에서 낭비되는 총에너지의 11%나 되는 에너지를 살려내면 2035~2050년에 평균 소요에너지의 56%를 절감할 수 있다.
바람, 물, 태양 에너지 활용에도 금속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한 채광작업도 해야 하지만, 그 양은 화석연료 시스템에 소요되는 금속의 1%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화석연료 에너지보다 훨씬 싸서 평균 사용요금을 그보다 63%나 줄일 수 있다고 제이콥슨은 얘기한다.
프랑스 환경단체 '데르니에르 레노바시옹' 소속 활동가들이 4일(현지시각) 파리의 총리관저 입구에 페인트를 뿌리던 중 연행되고 있다. 이들은 환경보호에 나서지 않는 정부를 규탄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이러한 일을 벌였다. 2023.01.05. 로이터 연합뉴스
재생에너지 활용을 막는 장애물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100% 활용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있다. 제이콥슨이 보기에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들이 재생에너지로 화석연료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되면 실제로 그렇게 할 것이다. 자신의 역할은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두 번째 장애는 앞서 얘기한 신기술, 예컨대 탄소 포집, 소형 원전 모듈화, 바이오연료, 블루 수소 같은 기술에 모든 것을 걸고 입법화해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것도 거의 쓸모없거나 아주 낮은 활용가치밖에 없다는 것이 제이콥슨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왜 그런 일을 계속하느냐? 그래서 이득을 보는 거대 로비그룹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장벽은 가난한 나라들이 재생에너지 활용 시스템으로 이행할 수 있게 해 줄 초기비용이다. 이것을 부자나라들이 도와주면 100% 재생에너지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질 수 있다. “(탄소배출 삭감) 목표는 2030년까지 80%, 2050년까지 100%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2030년까지 80%를 달성할 수 있다면 2035~2040년에 100%를 달성할 수 있다.”
독일 기후환경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ion) 활동가들이 4일(현지시간) 수도 베를린에서 '2022년은 시작에 불과했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 위기 경각심을 일우려 지난해 명화 훼손, 도로 점거 등의 시위를 벌였다. 2023.01.04 로이터 연합뉴스
장애물은 없앨 수 있다
여기에는 재생에너지 송전망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수요를 관리하며, 불었다 안 불었다 하는 바람과 낮밤으로 바뀌는 태양 에너지의 불연속,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과 관련해 제이콥슨은 대형 화석연료 발전소들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대형 발전소들도 유지 보수 작업과 노후화 때문에 정전 등의 유사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21년에 전기에너지의 75%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정전사태가 일어나고 전기료가 폭등했는데, 이는 원전 설비에 문제가 있어서 4기의 원자로 가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송전망들을 상호연결하고 여러 가지 에너지 축적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에너지 축적과 관련해 제이콥슨은 배터리 방식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본다.
수요를 충당하고 남는 재생에너지는 강도가 높은 에너지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연료전지 충전을 위한 그린 수소 생산에 투입돼야 한다. 제이콥슨이 보기에 이에 필요한 기술들을 활용하는 것은 최적화의 문제이지 로켓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재생에너지 활용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을 통해 해결된다.”
20일(현지시각) 환경단체 '멸종 저항' 활동가들이 프랑스 파리의 한 도로에 앉아 동아프리카 송유관(EACOP)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재 탄자니아와 우간다는 자국 영토를 가로지르는 1,443km 길이의 대형 송유관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의 에너지 대기업 토탈에너지가 사업을 주도한다. 2023.01.20 로이터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는 문제
<이코노미스트>는 기본적으로 제이콥슨의 문제의식에 동조하지만, 20년 정도의 단기간에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과욕’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에너지부가 2021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활용이 100%에 가까울수록 비용대비 효율이 높아지지만 마지막 몇 % 달성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실력 이상으로 한꺼번에 덩치를 키우고 밀어붙이면 공급망이 막히는데다, 님비현상도 있고 금방 개선되지 않는 규제들도 장애가 된다. 예컨대 미국에서 태양광 프로젝트들을 상호연결하려면 2005년에 비해 2배가 넘는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에서는 풍력발전 프로젝트 허가를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지금 건설중인 프로젝트의 8배가 넘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적하는 것은, 핵융합 같은 게임 체인저급 기적의 기술 개발을 굳이 거부할 것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이콥슨은 탄소 포집과 격리(퇴적), 바이오연료 같은 기술들은 풍력이나 태양광보다 덜 환경친화적이고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투자를 오히려 방해한다며 반대하지만, 모든 기술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화석연료 퇴출에는 기본적으로 제이콥슨과 같은 입장이지만, 2050년까지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탄소 포집, 합성연료 등을 포함해 아직 상업화되지 않은 기술들의 개발을 통한 대규모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패티 비롤 의장은 그런 기술 개발을 ‘헤라클레스의 과업’이라며, 혁신을 위한 기술개발 투자 없이는 목표 달성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석유파동 50주년, 다시 탈석유 도전
제이콥슨은 기술 개발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기술들을 버려 둔 채 기적의 신기술이 나와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온난화를 막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은 채 기존방식에 기대어 단물만 빨려는 기득권자들을 비판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2023년은 1973년에 이른바 ‘석유 파동’이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오펙 의장이던 셰이크 자키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말했다.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니다. 석유시대도 세계가 석유를 소진하기 한참 전에 끝날 것이다.”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석유시대다. 하지만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가 겹치면서 그 시대가 조만간 끝날 조짐을 확실히 보이고 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중동의 석유 부국들이 탈석유에 대비한 새로운 생존방식 추구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이 그것을 웅변한다. 그러나 제이콥슨이 10년도 기다릴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재생에너지로 만회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희망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